다낭이나 하노이 공항의 렌터카 창구에서 한국 국제운전면허증을 내밀었는데 직원이 고개를 젓는 장면. 생각보다 드물지 않습니다. 기간이 지난 것도, 서류를 빠뜨린 것도 아닙니다. 그 나라가 애초에 한국이 발급한 양식을 인정할 의무가 없는 경우입니다.

운전면허 시험장이나 경찰서, 도로교통공단에서 받는 한국의 국제운전면허증(IDP)은 1949년 제네바 협약 양식입니다. 표지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문제는 세계가 두 개의 협약으로 갈라져 있다는 점입니다.

협약이 두 개인 이유

1949년 제네바 협약과 1968년 비엔나 협약은 각각 다른 양식의 국제운전면허증을 규정합니다. 가입국은 자기가 가입한 협약의 양식만 인정하면 됩니다. 한국은 제네바 협약 가입국이므로, 제네바 협약에 함께 가입한 나라에서는 한국 IDP가 통합니다. 반대로 비엔나 협약에만 가입한 나라는 한국 IDP를 받아줄 의무가 없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 국제운전면허증이 거절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어느 나라가 어느 쪽에 들어가 있는지는 조약을 맡아 관리하는 유엔 쪽 기록이 원본입니다. 두 협약의 가입국 목록은 유엔 조약 데이터베이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양쪽에 모두 가입한 나라도 있고, 어느 쪽에도 가입하지 않은 나라도 있습니다. 중국이 대표적입니다. 중국에서는 국제운전면허증 자체에 효력이 없고, 중국 당국이 내주는 임시 면허를 따로 받아야 운전할 수 있습니다.

국제운전면허증만으로는 운전할 수 없다

많이 놓치는 부분입니다. IDP는 한국 운전면허증의 공식 번역본일 뿐, 그 자체가 면허가 아닙니다. 반드시 한국 면허증 원본을 함께 들고 다녀야 하고,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무면허와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여권까지 세 가지를 세트로 생각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진짜 문제는 벌금이 아니라 보험

협약이 맞지 않는 나라에서도 렌터카 창구 직원이 한국 IDP를 그냥 받아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서류가 통과됐다고 해서 합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고가 나면 보험사는 운전자가 그 나라에서 유효한 면허를 가지고 있었는지부터 따집니다.

  • 상대방에 대한 대인·대물 배상이 전액 거절될 수 있습니다.
  • 차량 자차 면책(CDW)도 함께 무효가 됩니다.
  • 무면허 운전으로 형사 책임을 묻는 나라도 있습니다.

빌린 차 한 대 값이 아니라 상대 차량과 사람에 대한 배상까지 개인이 떠안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협약 가입 여부를 굳이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출발 전에 할 일

  • 목적지가 어느 협약에 가입했는지 확인하세요. 각 국가 페이지의 국제운전면허증 항목에 표시해 두었습니다.
  • 비엔나 협약국으로 표시돼 있다면 예약 전에 렌터카 업체에 한국 발급 IDP를 받는지 직접 물어보세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업체마다 답이 다릅니다.
  • 일부 나라는 영문이 병기된 한국 운전면허증만으로도 운전을 허용합니다. 인정 여부는 국가마다 다르니 그대로 믿고 가면 안 됩니다.
  • 체류가 길어지면 IDP 유효기간(발급일로부터 1년)과 별개로 현지 면허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옵니다. 그 기간도 국가마다 다릅니다.
  • 도로 사정이나 치안이 걱정된다면 외교부 해외안전여행의 국가별 정보를 함께 보세요. 단계가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는 외교부 여행경보 4단계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정리

  • 한국 IDP는 1949년 제네바 협약 양식입니다. 비엔나 협약에만 가입한 나라는 이를 받아줄 의무가 없습니다.
  • IDP는 번역본입니다. 한국 면허증 원본과 여권을 늘 함께 들고 다니세요.
  • 창구에서 통과되더라도 협약이 맞지 않으면 사고가 났을 때 보험이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벌금보다 이쪽이 큽니다.
  • 운전 자격과 입국 자격은 별개입니다. 입국 쪽은 무비자·도착비자·사전비자에서 따로 다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