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해서 비행기 모드를 끄는 순간이 매번 조금 긴장됩니다. 신호가 잡히면 그대로 공항을 나서면 되고, 안 잡히면 와이파이가 닿는 자리에 서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택시 앱도 지도도 그 다음 문제입니다.

선택지는 셋입니다. 무엇을 고르느냐는 대체로 여행 기간, 한국 번호를 살려야 하는지, 데이터를 얼마나 쓰는지에서 갈립니다.

로밍 — 가장 편하고 가장 비싸다

쓰던 번호와 유심을 그대로 두고 통신사 요금제만 얹는 방식입니다. 한국 번호로 오는 문자와 전화를 그대로 받을 수 있어서, 은행이나 관공서 인증번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사실상 대체재가 없습니다. 대신 하루 단위 정액제가 많아 여행이 길어질수록 비용이 빠르게 붙습니다. 정액을 신청하지 않은 채 데이터를 켜고 착륙하면 종량 요금이 붙을 수 있으니, 출국 전에 요금제를 확정하고 데이터 로밍 설정을 확인하세요.

eSIM — 짧은 여행에 가장 무난하다

QR 코드로 내려받는 가입자 정보입니다. 유심을 갈아 끼우지 않으므로 한국 유심을 꽂아 둔 채 데이터만 현지 회선으로 쓸 수 있습니다. 한국 번호는 문자 수신용으로 살려 두고 데이터는 싸게 쓰는 조합이 가능합니다.

  • 출국 전에 사서 설치해 둘 수 있습니다. 도착해서 켜기만 하면 됩니다.
  • 단말기가 eSIM을 지원해야 하고, 통신사 잠금이 풀려 있어야 합니다.
  • 대부분 데이터 전용입니다. 현지 전화번호가 없어 배달 앱이나 식당 예약에서 번호 인증이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 테더링을 막아 둔 상품이 있으니 구매 전에 확인하세요.

현지 유심 — 오래 머물거나 데이터를 많이 쓸 때

현지 통신사 대리점이나 공항 카운터에서 사는 물리 유심입니다. 같은 데이터양이면 대체로 가장 쌉니다. 현지 번호가 생기므로 택시·배달 앱 인증도 됩니다. 단점은 듀얼심이 아니라면 한국 유심을 빼야 한다는 점, 그리고 나라에 따라 개통 절차가 붙는다는 점입니다. 요금이 한국보다 싼지 비싼지 감을 잡고 싶다면 물가수준 지수 읽는 법을 함께 보세요. 통신도 그 지수에 들어가는 항목입니다.

유심 하나 사는 데 왜 여권이 필요한가

선불 유심의 실명 등록을 법으로 정해 둔 나라가 많기 때문입니다. 익명 회선이 범죄나 테러에 쓰이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이고, 요구 수준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 여권 사본을 내고 서식 하나 쓰면 끝나는 곳.
  • 본인이 직접 매장에 가야 하고 대리 개통이 안 되는 곳.
  • 지문이나 얼굴 정보 등록까지 요구하는 곳. 이런 나라에서는 노점이나 자판기에서 산 유심이 개통되지 않습니다.
  • 외국인 여행자에게는 아예 팔지 않는 곳.

등록 절차가 있는 나라라면 도착 당일 밤에는 데이터가 없을 수 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공항 밖에서 지도도 택시 앱도 안 되는 상황이 가장 곤란하므로, 그런 나라에는 eSIM을 하나 미리 깔아 두고 현지 유심은 다음 날 여유 있게 개통하는 방법을 권합니다. 덧붙여, 연결이 아예 끊겼을 때를 대비해 외교부 해외안전여행에서 현지 공관 연락처와 영사콜센터 번호를 종이에 적어 두면 한 번은 도움이 됩니다.

정리

  • 한국 번호로 오는 인증 문자를 꼭 받아야 한다면 로밍, 짧은 여행이라면 eSIM, 길게 머물거나 데이터를 많이 쓴다면 현지 유심이 대체로 맞습니다.
  • eSIM은 단말기 지원과 통신사 잠금 해제가 전제입니다. 출국 전에 확인하세요.
  • 실명 등록이 필요한 나라에서는 도착 첫날 데이터가 없을 수 있습니다. eSIM을 보험으로 하나 깔아 두세요.
  • 공관 연락처는 오프라인에도 남는 형태로 적어 두세요. 자세한 안내는 외교부외교부 여행경보 4단계에 있습니다.